시민사회 대나무숲에 올라온 글을 옮겨 봅니다. 이 빠티를 만들 때에 이런 내용의 필요성을 느끼는 분들과 함께 고민을 나눠보려 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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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43번째

19. 1. 27. 오전 6:40
가만 보니 우리는 전문성이 너무나 부족하다. 물론, 규모가 좀 커서 직원을 여럿 고용하는 단체는 사정이 좀 다를 수 있다. 그러나 상근직원이 적고, 최저임금 챙겨주기도 빠듯하며, 그럼에도 불구하고 일은 많은 매우 열악한 대부분의 단체들은 전문성을 키우는 것이 대단히 어렵다.

전문성을 키우려면 그만큼의 정성이 필요한데, 정성은 결국 학습환경이고, 열악한 단체들에서 상근직원들이 학습을 할 수 있는 여유는 거의 없다. 일단 늘 업무가 많아서 학습할 시간이 없고, 직원을 고용하는 책임자도 전문가가 아닌 경우가 많아서 일도 스스로 배워야 하고(실무적으로는 배울 게 없다는 뜻이다), 그렇다고 해서 단체에서 실무역량강화를 위해서 학습을 시켜주는 것도 아니다. 기업들은? 다 한다. 왜냐하면 실무자들의 실력이 곧 기업의 이윤이 되니까.

시민사회단체들의 운동이 이기지 못하는 이유는 결국 실력차가 너무 크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우리의 맞서 싸워야 할 상대는 골리앗이다. 그런데, 우리는 마치 골리앗과 맞서는 다윗과 같다. 다윗이라고 해서 실력이 없었던 게 아니다. 성경에 보면 그는 평소에 자기가 치던 양이 사자에게 물려가면 쫓아가서 사자 입에서까지 새끼양을 구해왔다고 한다. 골리앗보다 한참 작을지언정 적어도 최소한의 전문성은 가지고 있었다는 소리다. 신자유주의 체제를 지탱하는 조직들은 기본적으로 갖추고 있는 전문성조차 운동권에는 없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어떤 시민사회단체들의 회원들과 책임자들은 전문성을 길러야 한다는 인식이 별로 없다. 왜냐하면 자기는 지금 고되지만 뜻있는 일을 하고 있고, 이기지 못해도 괜찮아, 마치 십자가상의 예수처럼 뜻있는 일을 하다가 역사에 한 획 긋고 가면 되는 거지, 아니면 자기가 좋아서 하는 일이니 일의 성패와는 상관 없이 내가 좋으면 된 거라는 식의 인식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회원들과 책임자들이 자기 자신과 자기 조직에 대한 반성이 너무 없다. 이렇게 성과를 묻지 않는 것은 어쩌면 무한경쟁과 성과주의로 점철된 신자유주의 체제에 대한 반작용인지도 모른다. 그러나 이는 실무자로 하여금 피를 말리게 한다. 왜냐하면 이대로는 우리가 골리앗과 제대로 한 판 붙어보지도 못한 채 가장 일선에서 얻어맞게 되는 건 결국 실무자일 게 뻔하니까.

전문성은 꼭 사울이 다윗에게 권했던 갑옷 같은 것은 아닐 수도 있다. 아니 오히려 오늘날 시민사회단체들의 실무자들은 우리가 그래도 고되지만 의미있고 좋은 일 한다는 회원들의 환상이라는 갑옷을 입을 것을 요구 받고 있다. 그러나 이것은 욕구이다. 신자유주의 체제 하에서 보상받지 못하는 감정을 보상받고자 하는 욕구이다. 어느새 회원들은 후원만 하고 실제 활동을 별로 하지 않는다. 무슨 행사나 집회를 하면 참석은 하지만 자기가 자기 손으로 직접 행사를 꾸려나가지는 않는다. 저마다 자기 일터와 삶의 현장이 있기 때문인데, 삶의 현장과 활동은 이렇게 괴리되고, 시민사회단체는 결국 이들의 억눌린 감정을 돌봐주는 고해소가 된다. 종교단체가 된다. 그런데 종교단체조차 종교단체가 갖춰야 할 전문성이 있다.

아무튼 우리는 실력을 길러야 한다. 그것이 반드시 신자유주의 체제를 지탱하는 조직들의 방법일 필요는 없다. 그러나 골리앗을 쓰러뜨릴 물매돌 던지는 실력이라도 우리는 길러야 한다. 그러나 시민사회단체들의 근무환경은 매우 열악하고, 실무자는 자주 교체된다. 실무자가 자주 교체되는데도 조직의 책임자들은 실무자가 못 버티는 것으로만 생각하고 아무런 위기의식이 없다. 실무자의 잦은 교체는 실무능력을 완전히 무력화하고 운동을 좀 먹는 일인데도 말이다. 결국 시민사회단체가 다시 일어서려면 실무자들에게 정상적인 근무여건(최저생계는 보장할 수 있는 여건)과 학습환경이 당연히 보장되어야 한다. 이것이 얼마나 중요한지 회원들과 책임자들을 설득해야겠다.

고난은 우리를 성장하게 한다고들 하지만, 우리의 고난은 결코 당연하지 않다. 물론, 적당한 고난은 우리를 성장하게 한다. 그러나 우리가 버틸 수 있는 수준 이상의 고난은 우리를 도리어 멍들게 할 뿐이다. 우리가 무엇을 위해 싸워야 할 것인지, 우리가 무엇을 위해 우리의 삶을 보장 받아야 할 것인지는 이제 너무나 분명해졌다.

시민사회활동가 대나무숲
#643번째 19. 1. 27. 오전 6:40 가만 보니 우리는 전문성이 너무나 부족하다. 물론, 규모가 좀 커서 직원을 여럿 고용하는 단체는 사정이 좀 다를 수 있다. 그러나 상근직원이 적고, 최저임금 챙겨주기도 빠듯하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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